독일은 왜 잘하는가

독일은 왜 잘하는가

어떻게 해서 독일은 2차 세계 대전을 극복하고,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1945년은 독일 사회가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 Stunde Null>이었다. … 자신들의 군사적 상징물을 갖고 있는 러시아나 프랑스와는 달리, 건국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미국 .. 과는 달리, 독일은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은 절차에 대해, … 똑바로 하는 것에 대해 그토록 열정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독일의 초대 정부는 긴박한 경제적 과제에 집중했다. 전후 초대 대통령인 테오도어 호이스 Theodor Heuss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에겐 실제로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 그것은 노동이다.> 호이스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Ludwig Erhard 두 정치인이 독일이 빠르게 회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라인강의 기적>의 초석을 다졌다.
소련의 봉쇄로 연합국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들은 두 가지에 집중했다. 하나는 독일이 다시 독재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략적 차원에서 독일을 서구의 품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 라인강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토벤의 고향이기도 한 본은 프랑크푸르트에 앞서 정부의 소재지로 선정되었다. 새로운 행정부는 비교적 작은 도시를 선택함으로써 배치의 임시성과 권력 분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전쟁 세대가 나이가 들면서 그들의 자녀는 부모에게, 더 넓게는 사회를 향해 묻기 시작했다. 서구 세계 전반에 걸쳐 1960년대는 음악과 성적 자유, 정치적 급진주의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 시대였다. … 독일에서 저항 운동은 … 젋은 세대가 보기에 과거에 대한 속죄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엘리트 집단을 향한 분노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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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Kurt Georg Kiesinger 와 루디 두치케 Rudi Dutschke. 1960년대 독일 운동권과 적군파.
이제 60대에 들어선 독일인에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전쟁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아마도 세 가지를 언급할 것이다. 첫째는 <무릎 꿇기>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게토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사건을 말한다. … 브란트의 극적인 사죄는 여론을 분열시켰다. 보수주의자들은 분노했다. 브란트는 헌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즉흥적으로 결정한 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두 번째 순간에서는 메릴 스트립이 등장한다. 1978년 미국 NBC는 4부작 미니시리즈 <홀로코스트>를 처음으로 방영했다. … 이 프로그램은 대학살의 진상을 전 세계 수백만 가정에 알렸다. 그러부터 1년 후에는 WDR 방송사를 통해 독일에서도 방영되었다. … 독일에서는 TV가 있는 가구의 거의 절반, 그리고 2천만 명 이상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 이후 수만 명의 시청자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느낀 충격과 수치심을 토로했다.
독일의 정치 시스템은 반대파를 흡수하는 뛰어난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녹색당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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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슈카 피셔 Joschka Fischer.
이제 그들과 그들의 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동독인들이 그들의 운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때, 그들이 이전에 살았던 구속의 삶과 그을음으로 더럽혀진 도시, 정보원의 감시를 받았던 삶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왜 그들은 달라진 삶을 더 많이 축하하지 않는 걸까? … 메르켈 총리는 2019년 국경일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독일의 통일이 동독 지역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긍정적인 경험만은 아니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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