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워크

유사생산성의 덫에 빠진 현대 지식 노동자들, 눈에 보이는 활동으로 생산성을 측정하며 바쁘게만 보이는 일상 속에서 진정한 성과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유사생산성(pseudo-productivity)의 흥망

지식 산업 부문에서 생산성을 측정할 구체적인 기준과 개선에 필요한 명확한 과정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은 직원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이런 불확실성에서 단순한 대안이 생겨났다. 바로 '실제 생산성을 가늠하는 대강의 대용물로 눈에 보이는 활동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직원이 사무실에 있거나, 원격 근무를 하면서 이메일 답장과 채팅 메시지가 도착하면 직원이 '뭔가' 일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 그러다 보니 우리는 원래 공장 노동에 따르는 육체 피로를 제한하려고 정한 주 40시간 노동을 똑같이 적용해 사무실 건물에 모여서 일하게 됐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바쁘다는 신호를 눈에 띄게 보낼 수 있는 이메일이나 슬랙 같은 도구가 생기자, 평균적인 지식 노동자는 끊임없이 전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최대한 빠르고 정신없이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일과 시간을 쓰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업무 트렌드 보고서에서는 팬데믹 첫해 동안 회의 시간이 2.5배 길어졌고, 인스턴트 메시지 채팅과 이메일 수신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소한 태스크든 대규모 프로젝트든 간에 일단 지식 노동자가 새로 일을 맡기로 하면,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행정상 부가업무가 발생한다. 해야 할 일이 늘어날수록 해치워야 하는 부가업무의 총량도 증가한다. 부수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업무 시간 외에 추가로 시간을 내서 실제로 업무를 해야한다. 전에 없이 바쁜데도 무엇 하나 제대로 끝내기가 힘들다.

원격근무를 하게 되면서 새롭게 생겨난 부가업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늘어났다. 원격근무를 할 때는 즉흥적인 협력을 조정하기가 힘들어지고 결정이 늘어지기 시작한다.

과부하는 업무량을 스스로 관리하는 방식이 서툴러서 생긴 부작용에 가깝다.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업무량을 힘겹게 처리하다 보면 유용한 결과물을 내놓는 속도가 크게 저하된다. 행정상 잡무를 하느라 일정이 엉망으로 뒤얽히고 주의가 조각조각 분산되면서 독창적인 사고를 뒷받침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업무량을 줄인다

앤드루 와일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연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모든 일을 그만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회와 세미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렇게 일을 줄였어도 논문 출판 문제가 남아있어, 페르마의 정리에 집중할 시간을 벌기 위해 거의 다 끝나가는 연구를 여러 부분으로 쪼개서 대략 6개월마다 짧은 논문을 한 편씩 발표하기로 했다. 와일스는 그냥 대충 되는대로 일을 적게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규칙(예: 학회 불참)을 정하고 습관(예: 원격 재택근무 최대화)을 들이는가 하면, 술책(예: 이미 끝마친 연구를 조금씩 발표)까지 동원했다. 이는 모두 자신의 주의를 끄는 중요한 항목의 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한다

제니 블레이크는 [자유 시간]이라는 책에서 "무료 체험판에서 혜택을 최대한 쥐어짜기"보다는 유용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구매해서 "프로가 되는"데 쓰는 돈을 늘렸다. ... 이만한 비용을 지출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런 전문가용 소프트웨어는 행정상 업무를 없애주거나 간소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블레이크는 태스크 목록의 크기를 대폭 줄이기 위해서 상당한 돈을 투자하고 있는 셈이었다.

푸시 push 기반 공정에서는 각 단계에서 작업을 완료하는 즉시 다음 단계로 넘긴다. 이와 반대로 풀 pull 기반 공정에서는 각 단계에서 준비된 경우에만 새로운 작업을 '끌어'온다. 브로드연구소에서는 이런 풀 방식을 단순하게 실행했다. 각 단계에 작업을 완료한 샘플을 두는 상자를 배치했다. 다음 단계를 수행하는 작업자가 이 상자에서 새로운 샘플을 가져간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샘플을 보관하는 상자가 가득 차기 시작하면 이를 채우는 기술자가 작업 속도를 늦춘다. 때로는 다음 단계 작업자가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퀄리티에 집착한다

재택근무의 문제는 집 안에는 익숙한 물건들이 가득하고, 그런 익숙한 물건들이 주의를 끌어서 명석하게 생각하는 데 필요한 섬세한 뉴런들의 움직임을 방해한다는 데 있다. 밖에 놓아둔 빨래 바구니를 지나칠 때면, 당장 해야 할 긴급한 일에 집중력을 유지하고 싶을 때조차도 우리 뇌가 가사로 주의를 돌린다. 대니얼 레비틴 Daniel Levitin이 "의식으로 떠오르려고 애쓰는 신경마디들이 일으키는 교통체증"이라고 표현하는 상태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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